중앙은행 금리 계속 올리는데
트러스, 감세 추진으로 '엇박자'
국채가격 伊·그리스보다 싸지고
S&P, 英신용 '부정적'으로 강등
취임 한달만에 지지율 추락하고
與 중진 "정책 폐기" 압박 세져
쿼지 콰텡 재무장관 "비판 경청"

"금융시장 혼란에 대한 걱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발표한 감세안을 지지한다." 지난 2일까지만 해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감세안에 대한 입장은 확고했다. 유턴은 없는 듯 보였다.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한 콰지 콰르텡 재무장관이 감세안에 반대하는 집권 여당 보수당 의원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고 있다는 보도(블룸버그)도 나왔다. 3일 콰르텡 재무장관이 기조연설을 통해 "감세는 영국 경제 성장을 위한 조치"란 내용을 발표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하지만 하루도 안돼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지지율이 크게 밀리고 있는 집권 여당인 보수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책 폐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리즈 트러스 내각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자 결국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안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감세안 철회 직후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1% 가까이 상승했다.

콰르텡 재무장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세율(45%) 폐지안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세율 45% 폐지안은) 번영하는 경제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었다"면서도 여론 악화를 고려해 정책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트러스 내각이 10일 만에 감세안을 철회한 것은 영국 경제가 파산 위기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감세안 발표 이후 단기간에 국채 금리가 치솟았다. 영국의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8월 1일만 해도 연 2.3% 수준이었다. 하지만 감세안이 발표된 뒤 지난달 27일 연 4%를 돌파했다. 감세와 에너지 비용 지원으로 불어날 재정 적자를 우려한 시장에서 국채 투매가 이어졌다. 금리는 지난 28일 연 5.1%를 돌파하기도 했다.
5년 만기 국채 금리도 4.5%를 넘기며 이탈리아(4%), 그리스(4%)보다 높은 수준에 머물렀다. 이탈리아, 그리스 국채가 영국 국채보다 비싸다는 얘기다. 금리가 오르면 국채 가격은 내려간다. 장기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국채가 휘청거리자 영국 연기금들은 10억파운드(약 1조 6000억원) 규모의 마진콜을 받았다. 증거금 역할을 한 영국 국채 가격이 떨어지자 추가 증거금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파운드화 가치도 대폭 하락했다. 미국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감세 정책 발표 직후 하루 새 약 4%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26일 장중 역대 최저치인 1.03달러까지 내려앉았다. 파운드화와 국채 가격이 추락하자 영국 중앙은행(BOE)은 650억 파운드 규모의 국채를 긴급 매입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이란 지적이 나왔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30일 영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 등급 전망은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으로 영국 시중은행이 판매를 중단하거나 회수한 주택담보대출 상품은 1688개에 육박했다. 금리가 급등하자 주담대 금리도 덩달아 치솟아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증폭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혼란이 실물경제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영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감세안이 잘못됐다"는 굴욕적인 공개 저격을 당하기도 했다. 지난 27일 IMF는 성명을 내고 "영국의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려할 때 이 시점에서는 선별적이지 않은 대규모 재정지출을 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높이고 있는 와중에 이와 상반되는 재정정책을 집행하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집권 한 달도 되지 않은 트러스 내각은 레임덕 위기를 맞았다. 트러스 총리는 지난달 6일 취임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러스 총리가 당장 사임해야 한다"는 의견은 51%로 우세했다. "총리직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답변은 29%에 불과했다.
허세민/오현우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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