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달러를 거치지 않는 아시아 스테이블코인, 외환 질서가 바뀐다
간단 요약
- 아시아 역내 현지 통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를 거치지 않는 직접 정산 인프라로 부상하며 외환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 아시아 스테이블코인 얼라이언스(ASA)가 각국 규제와 결제·송금·외환 사례를 연결해 스테이블코인의 외환 인프라 확장을 논의하는 협의체 역할을 맡고 있다고 전했다.
- 레이어제로와 같은 상호운용성 인프라가 금·국채·MMF·토큰화 증권 등 디지털 자산을 여러 블록체인과 금융 애플리케이션 사이에서 효율적으로 유통시키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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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외환 시장은 오랫동안 글로벌 금융 질서를 떠받쳐온 핵심 기반이었다. 한국 기업이 중국 공급망과 대금을 정산하고, 일본 무역사가 베트남 파트너와 결제하며 동남아 노동자가 본국으로 생활비를 송금하는 흐름은 모두 외환 인프라 위에서 움직여왔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5년 4월 글로벌 외환 거래 규모는 하루 평균 9조6000억 달러(약 1경4000조원)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이 중 30%에 육박하는 거래가 아시아 주요 외환 허브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거대한 자금 흐름을 지탱하는 시스템이 여전히 수십 년 전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과거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글자 수가 조금만 길어져도 추가 요금을 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낡은 방식처럼 느껴지지만, 금융은 여전히 비슷한 구조 위에서 움직인다. 정보는 실시간으로 이동하는 시대지만 돈은 여전히 중개은행과 사전 예치 계좌, 복수의 환전 단계를 거치며 느리게 움직인다. 특히 아시아 역내 통화 거래조차 상당수가 미국 달러를 중간 통화로 거치는 구조에 묶여 있다.
예컨대 원화에서 엔화로, 싱가포르 달러에서 필리핀 페소로 자금을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실제 정산은 달러 허브를 통과한다. 이 구조는 환전 과정에서 붙는 추가 비용과 정산 지연, 운영 비용, 유동성 비효율을 동시에 만든다. 세계은행 기준 글로벌 송금 비용은 여전히 평균 6%대를 웃돈다. 외환 인프라의 비효율은 금융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과 기업이 매일 지불하는 비용이기도 하다. 디지털 UI를 입힌 최신 핀테크 서비스 역시 상당수는 결국 오래된 백엔드 금융망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사용자 경험은 현대적이지만 정산 구조는 여전히 과거형인 경우가 많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문제를 일부 개선했으며, 이미 3000억 달러(약 450조원)를 넘어선 시장으로 성장했다.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는 자금 이동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였고, 글로벌 송금과 디지털 결제 시장에서 더 빠르고 저렴한 선택지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시장에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거의 99%는 여전히 달러 기반이다. 결제 기술은 진화했지만 통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아시아 금융 시장이 요구하는 다음 단계는 더 빠른 달러 이동이 아니다. 핵심은 현지 통화 간 직접 정산이다. 원화, 엔화, 싱가포르 달러, 페소와 같은 역내 현지 통화가 디지털 자산 형태로 발행되고, 달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이동하고 교환될 수 있다면 아시아의 외환 구조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전환은 특정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나 단일 블록체인만으로 완성되기 어렵다. 각국의 통화와 규제 체계, 결제 인프라, 금융기관의 운영 기준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현지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외환 인프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나 기업 단위의 실험을 넘어, 각 시장의 제도와 기술, 유동성 논의를 연결하는 협력 기반이 필요하다.
아시아 스테이블코인 얼라이언스(Asia Stablecoin Alliance, ASA)의 역할도 이 지점에서 부각된다. ASA는 아시아 지역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가속화하기 위해 빌더, 기관, 규제 논의 관계자들을 연결하는 협의체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크립토 거래 수단을 넘어 결제, 송금, 외환, 토큰화 자산 유통의 기반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연결뿐 아니라 제도와 시장 간의 조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ASA는 일본, 홍콩, 싱가포르, 한국 등 각국의 규제 체계가 어떻게 다르고 어디서 연결될 수 있는지 논의하는 한편, 아시아 각지에서 실제 도입이 이뤄지고 있는 결제, 송금, 기업 간 정산 사례를 발굴하고 공유함으로써 시장 전반의 학습 속도를 높이는 역할도 맡고 있다.
올해 열리는 ASA 컨퍼런스 2026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다. 작년 ASA 컨퍼런스에서는 은행, 기관, 자산 발행사 등 업계 전문가 700명 이상이 참석해 아시아 스테이블코인의 가능성을 논의했다면, 올해는 논의의 초점이 한 단계 더 구체화된다. ASA 컨퍼런스 2026은 한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동남아 등 각 시장의 규제 환경과 디지털 머니 모델을 비교하고, 현지 통화 스테이블코인이 실제 결제와 외환 인프라로 확장되기 위한 실행 조건을 다룰 예정이다.
동시에 스테이블코인의 도입 이후에는 이를 실제로 유통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도 중요해진다. 현지 통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와 외환, 기업 자금 운용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특정 체인에 고립되지 않고 여러 블록체인과 금융 애플리케이션 사이에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레이어제로와 같은 상호운용성 인프라는 이러한 자산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향후 금, 국채, 머니마켓펀드(MMF), 토큰화 증권 등 다양한 디지털 자산의 활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기반 결제 혁신의 1막이었다면, 다음 2막은 아시아 현지 통화 간 직접 외환이다. 이제 경쟁은 더 많은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자산을 발행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관건은 원화, 엔화, 싱가포르 달러, 페소와 같은 아시아 지역의 스테이블코인이 국경과 네트워크를 넘어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금융 유통 인프라를 누가 먼저 구축하느냐다. 외환 질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임종규 레이어제로 아시아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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